영화 더 썬 The Son 을 봤다.
더 썬은 인상적으로 봤던 더 파더 이후 플로리앙 젤레르 감독의 가족 3부작 중 두번째 영화이다.
영화와 음악의 매칭이 상당하길래 확인했더니 무려 한스 짐머가 담당했고 안그래도 바쁜 양반인데 더 바쁜 이유가 있었다.
알다시피 영화의 감상은 온전히 관객의 것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개인적인 감상평이 다른 의견과 조금 다를 수 있다.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 썬에서는 카메라가 집중하는 아들이 두 명 나오는데 이 영화의 제목의 더 썬은 둘 중 누구를 말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휴 잭맨을 의식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들의 고통과 그 고통을 다 헤아려주지 못했던 아버지의 가족간의 아픈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하는 걸까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어떤 이는 그들의 이름과 관계속에서 기독교적 해석을 시도하는데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반기독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미 앞선 영화 더 파더로 아버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안소니가 신의 위치에 있고 아들인 이름은 피터이긴 하지만 휴 잭맨이 예수라면 그가 구원한 이 세계의 자녀들은 그들의 높은 이상에 못미치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그들에게 닿지 못하고 죄의 고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죽음으로서 그들에게서 벗어난 비극적 운명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하면 이해할 수 있겠다.
율법이 우리의 죄된 것을 비춰준다는 구절처럼 모를 때는 잘지내다 예수를 알고 자신의 끝없는 죄악을 알게 되었을 때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간 많은 기독교인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을 사탄의 계획을 알 지 못하는 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들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버지는 끝내 알 수 없었고 아들의 죽음은 그의 의지였으므로 결코 피해갈 수 없었으며 아버지의 노력은 이미 충분했거나 아니거나와 관계없이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결론이었기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실제 현실 세계에서는 너무나 나쁜 아버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영화속 휴 잭맨은 매우 좋은 아버지였다.
다시말해 부자관계가 아닌 우울증 환자의 이해에 대한 내용이 핵심이란 뜻이다.
또한 노력은 소용없는 식의 운명주의 결정론같은 허무주의 느낌도 풍기고 있어 암울함을 더한다.
영화의 제목이 더 썬인데다 아들이 감정적으로 고통받고 있고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고 의사는 재발방지를 위해 퇴원을 말리는 상황에서 다 함께 모두 행복하게 잘살게 되었다 라고 영화가 끝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지막 비극이 언제 일어날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했던 총소리가 들리고 일어날 것이 일어나고 말았기에 오히려 안심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끔 설계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은 결국 감독의 비극 변태 기질만 확인한 것 뿐이다.
예술적으로 너무 딥해지만 이런 영화가 나오는가 보다.
2024.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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