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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by pinike 2021. 7. 26.

2018년작 중국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大象席地而坐, An Elephant Sitting Still 를 봤다.
비주류 드라마 장르이고 감독 본인 소설이 원작이며 연출 데뷔작인 이 영화로 주목받기 시작하지만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되었다.
늘 앉아있는 코끼리는 사람들이 구경하다 포크로 찌르기도 하지만 이내 관심에서 멀어진다.
다중플롯으로 펼쳐지는 네명의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본인 스스로 무언가를 행하기 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하거나 우연히 일어난 일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겪는 상황을 리액션만 할 뿐이다.
그래선지 카메라의 시점은 주변 사물이나 환경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인물의 심리상태와 표정변화에만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인물의 과도한 클로즈업과 아웃포커스는 온전히 그들의 입장에 서도록 몰아 붙이고 있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무채색의 잿빛 화면은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롱테이크신은 그들에게 닥친 고통스러운 현실을 드러내며 드론의 흔들림은 어찌할바 모를 갈등을 표현한다.
4시간의 러닝타임은 길고 세계관은 염세적이어서 보기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몰입되기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들의 행보가 궁금해져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옥의티처럼 인물을 따라가는 드론 카메라를 조종하는 스탭진이 화면 모서리에 살짝 비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으나 영화 전체에는 영향이 없는 가벼운 실수로 보였다.
형편없는 중국영화들 사이에 중국의 민낯을 날카로이 다룬 이런 작품성이 높은 영화를 보니 자연스레 지구 최후의 밤이 떠올랐고 내용과 형식은 크게 달랐으나 절제되어 풍기는 밀도높은 공기는 꽤 비슷한 면이 있다 느껴졌다.
코끼리의 울음은 우렁찬 희망인지 절규하는 비명인지 알 수 없지만 처한 상황을 봤을 때 절망에 가까워 보인다.
더럽고 역겨운 이 세상이 나를 최악으로 빠뜨리면 보호받지 못한채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말 할 수 있느냐면 그렇지 않았다는 살기위해 더욱 발버둥 쳤었어야 했다는 윤리가 자책시킬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더 큰 고통이 잔인하게 찾아 올 것이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세상을 원망하며 목놓아 우는 것 뿐이리라.

 

2021.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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