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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 로마인 이야기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by pinike 2011. 11. 3.

로마 역사를 다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읽었다.
1권은 BC 753년 최초 로마 건국에서부터 BC 270년 이탈리아 통일까지를 다루었다.
기원전 13세기 트로이가 함락되면서 아이네아스가 탈출하여 어느 해안에 정착하고 이후 아스카니오스, 알사롱가 가문이 이어져 한 왕녀에게서 로물루스가 탄생하고 BC 753년에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다.
사비니족등의 민족이 로마로 이주하게 되면서 다민족 형태의 모습을 띄게 되었고 정치적으로는 왕, 원로원, 민회의 3개 국정이 구성되었다.
2대왕 누마 이후 로마의 국가적, 민족적 특성상 종교를 대신해 윤리, 도덕 역할을 맡은 법과 철학이 발달하게 된다.
3대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알바롱가를 공략하게 되고 4대왕 안쿠스 마르티우스를 거쳐 5대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최초의 선거운동을 실시했고 도시개발에 힘을 썼다.
6대왕 세르비우스 툴리우를 거쳐 7대왕 독재적 전재군주 정치를 한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를 마지막으로 왕정시대가 종료되고 공화정시대가 열린다.
5대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손자인 7대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아들 섹스투스가 겁탈한 루크테리아의 남편 콜라티누스의 동력자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기원전 509년 공화정을 창시한다.
왕 대신 2인 집정관을 세워 2인 집정관, 원로원, 민회의 3개 국정이 구성되었고 원로원을 강화시켰다.
최초 2인 집정관인 브루투스, 콜라티누스를 시작으로 여러 인물이 2인 집정관을 거치는 역사가 계속 되며 정치제도는 더욱 보완, 개선 된다.
귀족에 대항하는 1차, 2차 평민항쟁이 일어나게 되고 그와중에 켈트족이 침입하여 로마는 켈트족에 비참히 항복을 하게 된다.
카밀루스에 의해 로마의 도시는 재건이 되었지만 내분이 발생하게 되고 이후 리키니우스법을 채택하여 정치적 전면 개방이 이루어진다.
그로인해 로마연합이 형성되고 원활한 로마연합을 위해 도로를 건설한다.
전쟁은 언제나 끊이질 않고 일어났는데 삼니움족과 전쟁을 하게 되고 이후 타렌툼의 용병 에페이로스왕 피로스와 전쟁을 하게 된다.
피로스와의 2차 전쟁 이후 로마는 타렌툼을 점령함으로서 BC 270년 이탈리아 전체를 통일하게 된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종교나 이념에 매이지 않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관에 의한 유연하고 포용력있고 융통성있는 정치제도 확립으로 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비기독교인이자 반기독교인인데 종교나 특정 이념에서 떠나 역사를 바라봐야 정확히 역사를 바라볼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오노 나나미 개인의 역사관일텐데 역사관은 역시 가치관, 사고관으로 이어지고 그러므로 종교를 떠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려준다.
그녀가 종교를 떠나 자유로움을 가지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역사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자유롭고 유연하고 개방적인 로마의 역사에 매력을 느꼈던 건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또한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실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역사를 좋아하게 된 같은 이유로 마키아벨리를 좋아한다.

그녀의 말대로 종교를 떠나 있었던 점은 역사의 현상과 사건 뒤에 있는 국가와 인간의 이해관계를 좀 더 폭넓게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서 더 아쉬웠던 점은 그 이해관계와 함께하는 종교적 흐름(영적 역사)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1권을 읽었는데 언제 15권 마지막까지 읽을까하는 막막함이 앞선다.
벽돌에 집중하여 쌓다보면 언젠가 벽이 되어 있을 꺼라 믿고 한장한장 쌓아 나가야 겠다.


2011. 11. 02
(바로 해도 2011 11 02 꺼꾸로 해도 2011 11 02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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